Criticism
 
 
 
 
 
 
 
긴 시간, 오랜 침묵으로 드러난 자연



  근대미술 수용기에 사생과 묘사는 미술에서 절대적인 위상을 차지하는데 그로 인해 형성된 미술관(美術觀)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자연풍경을 사생하고 인체를 묘사하는 것이 당시 미술의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을 통해 이입되고 유지되어 온 미술의 여러 흔적들이 그만큼 뿌리깊음을 본다. 그런가하면 우리에게 자연을 보고 느끼고 체험하며 이를 그리는 것을 다른 어떤 것보다도 미술에서 가장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습속이 전통적으로 혹은 유전적으로 남아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인간을 둘러싼 자연환경을 보고 느끼고 이를 인간적으로 해석하는 전통은 그만큼 인간의 내음과 손길, 자취와 그림자를 짙게 풍기는 기나긴 미술의 역사에 걸쳐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은 자연을 자신의 육체를 통해 바라보면서 정서와 숭고, 깊이와 두려움을 지니 것, 인간 능력을 벗어나 있는 초월적인 힘으로 절대적인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소재 삼는다. 그것은 단순한 대상의 차원을 넘어선다. 사실 풍경은 매체에 불과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의 전통, 문화, 미술과 관련된 사유 아래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동업의 자연풍경을 그린 그림 역시 구체적인 자연에 대한 해석이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많은 사생의 체험을 간직해왔다. 그리곤 그 경험이 그를 화가가 되게 했다고 한다. 지금도 그는 여러 곳을 답사하고 기록하고 담아둔 후에 이를 빌어 그 자연에 대한 인상, 해독을 조형화 한다. 그것이 그의 그림이다. 그렇게 즐겨 다닌 곳들은 다름아니라 제주도, 마라도, 설악산, 소백산, 화왕산, 천왕산 그리고 경주(소나무) 등이다.

  특히나 그는 두리뭉실한 산의 느낌이 좋고 그 바위와 땅이 지닌 견고한 질감이 마음에 든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무척 단단하다는 경질, 육질의 느낌이 든다. 화면처리에 의한 그 견고하고 강한 느낌은 절대적인 정적과 힘을 은연중 드러낸다. 그는 인간의 삶이 배제된 천연의 자연만을 다루면서 그 자연의 남성적인 힘과 절대적인 위용을 지극히 단순화시켜 그려낸다.

  건축용 자재인 장석이란 돌 조각과 아크릴릭을 섞어 그린 두툼하고 조밀한 질감을 지닌 화면에는 그가 포착한 자연이 심플하고 납작하게 들어차 있다. 전체적인 색조 역시 지극히 억제된, 조율된 몇 가지 색상이 깔려있으며 수없이 많은 점을 찍어서 바탕을 만들고 그 위를 덮어나간 그림이다. 밑 색들이 깊이 있는 색감을 만들고 겹치면서 얼핏 얼핏 드러나는 다채로운 색들이 중층적인 깊이를 만든다. 그는 자연을 자신의 느낌의 색으로 치환하고 모든 것들을 납작한 평면에 밀착시키면서 촉각적인 질감을 부여했다. 그래서 박수근의 그림에서 만나는 단색과 돌의 질감이 슬쩍 연상될 수도 있다.

  최근작은 회색 톤으로 조율된 흑백의 그림이 일부 선보인다. 단색조회화인 이 그림은 소나무만을 정면에서 걷잡아 내면서 소나무 등 껍질의 질감, 구불구불한 곡선 등만을 흥미롭게 그려낸다. 녹색으로 그려낸 숲의 단면은 가장 인상적인 작업이다. 다소 소박한 자연풍경, 단조로운 화면으로 기울 수 있는 지점도 있지만 자연을 그려내는 또 다른 힘들이 잠재된 화면이다.

  그는 자연을 보면서 자신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풍경을 재현한다. 기묘한 느낌을 불러 받은 자연에 대해 다시 그 충격, 감흥을 조형화 하는 것이다. 관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자신이 경험한 그 잔상을 새삼 심어주기 위한 것이 그림이다. 우문이지만 왜 자연을 그리냐는 질문에 그는 그냥 쓰윽 그린다는 말을 한다. 왜 그림을 그리냐 하면 그리고 싶어서이고, 왜 그리고 싶으냐면 그 풍경이 순간 묘하게 다가와서 인상적이라 기억에 남고 그것이 지워지지 않고 가슴에 납처럼 드리워져 있거나 바람처럼 떠돌아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자연풍경은 실재하는 현실경이면서도 다분히 비현실적인 느낌이 강하게 든다. 탈색된 세계, 일상적인 사물의 색채가 지워진 세계, 음이 제거된 침묵과 적막이 흐르는 세계가 그것이다. 그는 그러한 고독과 침묵으로 절여진 풍경의 한 순간을 자신의 색채와 질감으로 고정시켰다. 이 시간은 아주 긴 시간이다. 너무 긴 시간은 체감되지 못한다. 영원이란 것이 그럴 것이다. 그 시간 아래 잠들 듯이 자리한 자연이 이동업의 풍경이다.



2003.10. 박영택 (미술평론, 경기대 교수)





그의 그림에는 시적인 긴장미가 있다



  자연은 그 자체가 조형의 전범(典範)이면서 무한한 형태적인 변주를 허용한다. 다시말하면 화가의 조형적인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사실주의 화가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 재현하려는 반면 인상주의 화가는 태양광선의 변화에 따른 다양한 색채 이미지의 작업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동업도 자연 풍경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대상을 단순 평면화시킨 간명한 조형 감각으로 자연의 이미지를 포착하고 있다. 그의 그림은 한마디로 일체의 설명적인 요소를 배제한 단순 명쾌한 이미지 구성의 형식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분명 산과 하늘과 바다라는 자연의 형상이 담겨 있슴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상적인 시각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형태감각을 구사함으로서 회화적인 가치를 얻으려 하는 것이다. 그림은 반드시 눈에 보이는 대상만을 진실로 받아 들이지는 않는다. 그림은 반드시 눈에 보이는 대상만을 진실로 받아 들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불가시적인 존재의 그림자까지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작가의 조형감각이요 그림의 가치라 할 수 있다.

  그의 그림에 기법적인 새로움 및 신비함은 없다. 백일하에 드러나는 단조로운 점묘법 또는 평면구성으로서 모든 표현적인 이미지를 대신한다. 그러기에 거기에 숨겨진 이미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그림은 분명 자연 풍경이라는 현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거기에 이미 작가적인 현실인식은 자리하지 않는다. 이상적인 공간으로서의 개별적인 조형언어만이 자리하고 있을 따름이다. 점묘법이라든가 평면적인 색면구성은 결코 새로은 것이 아니면서도 그의 그림에는 새롭게 다가온다. 그것은 아마도 원색적인 이미지를 지니면서도 실제로는 2-3차색으로서의 중간색이 만들어 내는 미묘한 색채감각 탓이리라. 뿐만아니라 정태적인 이미지로서의 간결한 형상의 배치에 의한 내적정서가 낯선 느낌을 지어내고 있기 때문이리라.

  질감을 느끼기 어려운 매끄러운 그림의 피부는 정태적인 이미지를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정제된 풍경이라고 할까. 산과 바다와 하늘로 대별되는 자연에 동일한 조형어법을 적용함으로서 마치 색면대비 및 조화를 추구한 평면 작업으로서의 형식에 접근하고 있다. 거기에는 감정의 과잉이 없다. 단지 관조한 대상으로서의 자연의 실체만이 자리 하고 있을 따름이다. 어쩌면 종교적인 엄숙함이라든가 끝없는 침묵, 그리고 적요한 내적 감정을 간직한 하나의 관념화에 가까운지 모른다. 실제의 대상을 형태적인 면에서 생략, 단순화, 함축하는 그의 조형감각은 이미 비실제적인 조형공간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이라는 대상은 시각적인 이해를 위해 형상만을 제공할 뿐, 실제감으로서의 자연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그의 그림에서 보여주는 간명한 형태속에는 함축적인 이미지가 존재한다. 자연을 사실적으로 복원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형태가 오히려 자연의 리얼리티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리얼리티는 사실성과은 다른 시각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대상이 존재함으로서 가능한 형태적인 생략, 단순화는 결과적으로 자연이 가지고 있는 묵직한 존재감의 압축으로 받아 들일 수 있는 것이다.

  그의 구도는 일반성에서 떠나 있다. 정태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서일까. 단순 평면적인 이미지로서의 하늘이 화면의 6-7할에 이르는 작품에서 그의 대담한 조형감각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은 산을 대상으로 한 경우, 산이 지니고있는 형태미보다는 산에 내재된 인간의 존재감. 즉 자연스럽게 형성된 거미줄같은 산길을 시각화한 점이다. 산길은 산과 인간의 관계를 나타낸다. 지형에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산길의 이미지는 자연자체가 그려낸 인간의 자취이면서 조형적인 아름다움으로 승화될 수 있슴을 보여주고 있다. 산길이 내포하고있는 여러가지 의미 내용은 문학적인 서술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것은 서술적인 산문만이 아니라 함축적이고 상장적인 운문으로서의 이미지를 의미한다. 그렇다. 그의 그림에는 시적인 긴장미가 있다. 실제의 대상속에서 추스려낸 간결한 형태미가 가지고 있는 내적 의미로서의 서정성이야 말로 그의 그림을 이루는 뼈대가 아닐까.

  너무도 생략적이고 간결한 나머지 따뜻한 감정이 들어 않을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수한 점들로 이루어진 유기적인 이미지는 평면 작업에서 감지할수 없는 정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점 하나하나가 모여 평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집합적인 구조식의 작업에는 그 자신의 개인적인 정감이 담기기 마련이다.

  동일계열 색상으로 통합한 항구 풍경을 대상으로 한 작품은 잠재적인 그의 예민한 조형감각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개별적인 형식의 조형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색채대비에서 비롯되는 시각적인 긴장감보다는 내면인 풍경으로서의 순화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나으리란 생각이다.

  자연의 또다른 조형적인 해석을 보여주는 그의 이번 개인전은 시각적인 이해보다는 사유를 통한 접근을 반기리라고 생각한다.



1993. 9. 신항섭 (미술평론가)